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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 – 첫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by miiv 2025. 6. 16.

영화 건축학개론 포스터
영화 건축학개론 포스터

 

영화 ‘건축학개론’은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존재하는 첫사랑의 기억을 섬세하게 담아낸 감성 멜로다. 건축 설계를 매개로 펼쳐지는 두 남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사이에 남은 감정의 결은 잔잔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본문에서는 ‘건축학개론’이 전달하는 첫사랑의 의미, 성장, 그리고 후회와 회복의 감정을 분석한다.

첫사랑은 지나가는 감정이 아닌, 삶을 남기는 과정

2012년, 이용주 감독이 연출한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을 정면에서 마주한 영화다.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중 서사 구조 속에서, 기억과 시간, 감정과 현실이 교차되며 관객의 내면을 조용히 흔든다. 영화의 주인공 서연과 승민은 대학 시절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나, 조금씩 서로에게 물들어가지만 끝내 이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두 사람은 다시 재회하며 자신들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첫사랑은 왜 이뤄지기 어려운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시절의 감정이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가’를 묻는다. 관객은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자신의 과거와 겹쳐진 감정을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건축학개론’을 되새기게 된다. 본 글에서는 <건축학개론>이 첫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감정의 잔상은 시간과 함께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이별 이후의 삶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한다.

기억의 설계도 위에 그려진 첫사랑의 흔적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을 단순히 감정의 교류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는 ‘건축’이라는 소재를 통해 관계를 구조적으로 바라본다. 설계하고, 만들어보고, 무너뜨리고, 다시 조립해 보는 과정은 두 사람의 감정선과 정교하게 연결된다. 대학 시절의 승민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건축학도였고, 서연은 그런 그에게 천천히 다가와 자신의 세계를 공유한다. 두 사람의 교감은 잔잔하지만 명확하며, 오히려 그 절제된 감정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감정은 결국 어긋난다. 불완전한 시기, 미숙함, 용기 없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서연은 기다렸고, 승민은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감정은 가라앉은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서로의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겨진 것은 감정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다. 이 영화의 탁월한 점은 첫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련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완전하고 때로는 어리석다. 그러나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건축학개론>은 그것을 정직하게 보여주며, 첫사랑이란 끝난 것이 아니라 내 삶에 계속 살아 있는 과정임을 말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성인이 된 서연이 승민에게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다. 그 눈물은 원망도, 미련도 아닌 ‘마음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감정’이다. 관객은 그 장면에서 각자의 과거를 떠올리며 깊은 공감을 느낀다.

첫사랑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이다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의 본질을 “끝난 감정”이 아니라 “남겨진 감정”으로 묘사한다. 그 감정은 삶의 한 페이지로서 봉인되지만, 문득 스치는 바람처럼, 오래된 노래처럼 다시 떠오른다. 이 영화는 그런 기억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점, 오히려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지금은 늦었지만, 그때는 정말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후회를 긍정하는 것이자, 감정의 흔적이 여전히 의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건축학개론>은 회상에 그치지 않고, 감정의 주체로서 관객을 감싸 안는 영화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으로 진심으로 좋아했던 그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지금의 우리를 지탱하는 가장 순수한 기반이 된다. <건축학개론>은 말한다. “사랑은 그 시절의 실수였을지 모르지만, 그 실수는 내 삶의 아름다운 설계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설계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뚜렷해진다.